신라의 김춘추는 唐과 동맹, 삼국통일의 길을 열었다
 
구미조은뉴스/ 편집인 / 윤영학

조선의 인조 조정은 쇠망하는 明과 일어서는 淸 사이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병자호란을 불렀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세계제국으로 커가는 唐을 과소평가하였다가 망국의 길을 열었고, 신라의 김춘추는 唐과 동맹, 삼국통일의 길을 열었다. 지도자의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은 민족과 국가의 興亡을 좌우한다.
 
일본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일본 장교단의 젊은 엘리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보병대위의 눈을 통해 일본이 2차대전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실패가 일본이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과정을 살펴 보았다  
 
세지마 류조가 大本營(대본영) 육군부 작전과로 발령된 것은 1939년 12월 초순이었다. 당시 대본영 육군부는 네 가지 문제로 苦心(고심)하고 있었다. 노몬한 사건의 뒤처리, 中日전쟁의 장기화, 육군군비 증강 계획의 재검토, 그해 독일이 시작한 유럽 전쟁에의 대응.

특히 1937년에 시작된 中日전쟁이 골칫거리였다. 일본군은 중국 대륙의 점과 선을 확보하고 있을 뿐 蔣介石(장개석)이 지휘하는 중경의 국민당 정부는 철저한 抗戰(항전)을 선언, 미국 등 국제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세지마는 자신의 回想錄(회상록) ‘幾山河’에서 일본이 태평양 전쟁으로 끌려가는 계기는 中日전쟁이었다고 반성하였다. 세지마는 기밀서류를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중일전쟁 시작 1년 전 일본 육군의 천재로 불리던 이시하라 간지 작전과장이 작성한 문서를 읽을 수 있었다.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 만주국을 만드는 데 主役(주역)이었던 이시하라 대좌는 이렇게 썼다.

<일본은 모든 노력을 만주국 건설에 집중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육군은 소련의 위협에, 해군은 미국의 武力간섭에 대처하여야 한다. 다른 방면에서 우리의 國力(국력)을 소모하는 것을 절대로 피해야 한다.>

1940년 9월 일본은 독일 및 이탈리아와 함께 ‘三國(삼국)동맹 조약’을 체결한다. 이로써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敵(적)으로 돌린 셈이다. 일본의 국가 지도부는 승승장구하는 독일의 國力(국력)과 戰力(전력)을 과대평가하고 영국과 미국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세지마는 回想錄(회상록)에서 적고 있다.

1941년 6월22일 독일군이 소련을 기습 침공하였다.
5월부터 대본영에는 獨蘇開戰(세지마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반성한다.
 <첫째, 中日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 했다. 둘째, 三國동맹 체결과 프랑스령 남부 인도지나 진주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1939년 가을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난 시기를 이용하여 중일전쟁의 대승적 해결, 즉 점령지로부터의 철병을 단행하였어야 했다. 1941년 10월 도조 내각 성립 때 萬難(만난)을 무릅쓰고 對美교섭을 통하여 三國동맹을 파기하고, 만주 이외의 지역으로부터 철병하였어야 했다. 물론 이 대결단은 국내적으론 군과 관련되는 일이고 미국이 응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지만...국가는 생존과 발전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발전에 치중하여 절도와 한계를 잃으면 생존이 위험해진다. 당시 우리나라는 지도원리가 확립되지 않았다. 무리하게 발전을 추구하여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일으키다가 보니 생존이 어렵게 되었다. 필수적인 자원인 석유 등을 미국과 영국에 의존하면서 두 나라를 敵對視(적대시)하다가 전쟁으로 가서 지고 말았다. 만주를 제외한 중국 및 滿蒙(만몽)지역으로 세력권을 확대한 것은 발전의 한계를 넘는 暴走(폭주)였다>

 . 한국인들 중 '이제 미국의 시대는 지나고 중국이 떠오른다. 중국과 협력,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본의 誤判이 생각난다.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도운 영국과 미국을 멀리하고 독일과 친해지다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독일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代價이다. 프랑코는 영국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 독일의 참전 요구를 거절, 國體를 보존하였다. 

중국이 종합 國力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것은 200년 내로는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할 때이다. 조선의 인조 조정은 쇠망하는 明과 일어서는 淸 사이에서 줄을 잘못 섰다가 병자호란을 불렀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세계제국으로 커가는 唐을 과소평가하였다가 망국의 길을 열었고, 신라의 김춘추는 唐과 동맹, 삼국통일의 길을 열었다. 지도자의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은 민족과 국가의 興亡을 좌우한다.    
 
기사발췌 /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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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07 [12:37]  최종편집: ⓒ 구미조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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